AV뮤비회원리뷰

영화 속 배설의 철학에 관한 소고

0 2019.01.28 23:07
...

요즈음 지극히 말초적인 야동에 사로잡힌 이들을 위해, 오늘 밤 나는 한 편의 한국 독립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독립영화의 상당수가 그렇듯, 이 영화에서도 감독과 배우들은 진지한 인생 철학에 대해 논하며 주제의식을 최대한 밀도 있게 풀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개의 관객들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 영화의 줄거리가 사실은 문학을 뛰어넘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짜여져 있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고, 그 난해함에 한 마디 짤막한 욕설을 뱉으며 영상의 흐름에만 몰두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정신줄을 놓아야만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의 첫머리로 가 보자.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어느 수족관에서 만난다. 이들은 아픈 기억에 사로잡혀 인생의 길에 대해 찾고 있는 불쌍한 청춘들이다. 둘이 내뱉는 말이 함축적인 운율의 언어라기보다 개똥철학의 부산물에 가깝다는 점만 빼면 이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애틋하였다. 이들은 곧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며, 남자는 여자를 해방시켜 주기 위해 그의 미적감각을 과시하게 된다.

 


 

보라. 아버지를 살해한 딸로 표상되는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한 긴 여정의 시작으로, 여자는 과감하게 머리를 밀어 버린다. 여자의 썩은 표정으로부터, 제가 밀어 달라고 해 놓고도 막상 스타일이 좆되니까 바로 썩창이 되는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하여튼 안 하던 짓을 해서 뭔가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또 다시, 정상인이라면 하지 않을 짓으로부터 인생의 해답을 얻고자 한다.

 


 

오해하지 말 것. 여자의 손을 보라. 이들은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욕조에서 왜 굳이 비눗방울 놀이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비눗물 묻은 손으로 왜 서로에게 딸기를 먹여 주어야 하는지(그녀의 딸기는 뒤에 나온다) 모르겠지만 여하간 이들은 비눗방울 놀이로 현실의 괴로움을 잊으려 한다. 당연히 실패한다.

 


 

대머리를 모자로 덮고서 이들은 자전거로 여행을 떠난다. 자아를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국토대장정 한 번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보람찬 가슴과 미래에 대한 결의가 5 정도 된다고 하면 발바닥에 잡히는 물집의 고통은 나머지 95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자전거를 타니까 조금 나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작중의 때는 겨울이다. 그리고 길은 국도로도 못 쳐 줄 논두렁길이다. 즉 자전거 타다가 걸핏하면 미끄러질 것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전거를 옆에서 끌기만 하며 가야 한다는 것이다. 걸어서도 힘든 길을 타지도 못할 자전거를 끌며 굳이 간다는 점에서 이들이 진실로 문제가 많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처음 여행의 출발 시점을 제외하면 이들은 자전거 따위 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의 갈등은 대체 언제 해소된단 말인가?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거의 20여 분이 흐를 때까지 이들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이들은 눈발 날리는 길에서 결국은 자전거를 내다 버리고 어느 논두렁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점에서 해법이 제시된다. 남자가 소변 보는 장면(이딴 거 관심 없는 거 서로 잘 아니까 생략하자)에 크게 관심을 보인 여주인공은, 남자의 잦이를 옆에서 바라보다 가만히 쪼그려 앉는다. 히히! 오줌발사! 하며 소변을 힘차게 뿌리는 남자를 향해 "신기하다..."는 한 마디를 남긴 여주인공은, 그때부터 비로소 지금까지 풀어놓지 못했던 가슴 속의 응어리들을 털어놓는다. 머리를 박박 밀기 전에 좀 털어놓지 않고, 왜 이제 와서,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오줌 누는 남자 옆의 논두렁에 앉아서야 마음을 여는 것일까? 그것은 여자의 마음이 열리는 때가 생리적으로 개방되는 때와 합치된다는 점에서 사실 필연이었다.

 


 

무언가 가슴 속에 묵직한 것이 치미는 듯 괴로워하는 얼굴.

여러분은 익히 알 것이다. 여자가 내숭을 버리고 솔직해질 때가 언제인가? 그녀의 샘을 적셔 줄 때가 아닌가? 우리는 봊물...아니 봇물이 터지고서야 비로소 그 얇은 한 장의 천을 벗길 수 있지 않던가? 마찬가지이다. 개똥철학은 입에서 나온다고 다 나오는 것이 아니다. 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는 배설의 형태로서만 그 철학을 오롯이 내뱉을 수 있고, 그녀가 주워섬기는 그 모든 스크립트는 발화의 형태로는 완성될 수 없다.

 


(처음엔 무슨 연가시나 회충이 기어나오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그냥 장액이 새는 것이었다)

 

그녀는 엉덩이를 깜으로써 마침내 스스로를 개방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구태의연한 모습을 다 벗어던지지 못해, 입으로 계속 개똥철학을 주절거린다. 그것이 완성될 순간이 입으로는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도 아직 모르는 듯하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 쓸데없는 스크립트의 주절거림이 돌연, 멎는다. 바로 그녀가 배설의 욕구를 강하게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부터이다. 마치 산고와 같이, 그녀는 이제 말이라는 얼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오직 하나의 형태로 그녀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내비칠 준비가 되었다.

 


 

뒤이은 배설. CG 따위 없는 독립영화의 배설은 여배우가 실제로 간밤에 먹은 것을 짜내는 식으로 이루어지나 보다. 굉장히 사실적인 "뿌직" 소리와 함께, 그녀는 힘차게 장 속의 악을 배출한다. 그것으로 그녀의 심경의 토로는 방점을 찍는다.

개 버릇 못 준다고 그녀는 다시 주절거림을 계속하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다. 그녀는 이미 개운해졌다.

 


 

이 상쾌한 표정을 보라! 눌 수만 있다면 어디든, 그녀가 똥을 누는 곳이 바로 해우소였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순간이다.

조금 전까지 망할 고철덩어리 자전거를 끌고 다니던 때의 괴로움도, 머리를 박박 밀었을 때의 찌푸림도 사라졌다. 오직 평화와 안식만이 깃들어 있다.

개똥철학은 1회의 쾌변보다 가치가 없었음이 이 표정 한 장으로 증명된다.

 


 

그들은 이제 다시 행복하게 길을 떠난다. 저 병신 같은 자전거를 왜 안 버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한결 개운해진 얼굴로 길을 간다. 그리고 그들의 여정은, 어느 버려진 묘지 앞에서의 야외 파워쎆쓰!로 끝을 맺는다.

 

 

 

정리하자면,

1. 아무리 영화의 주제의식을 떠들려 해 봤자 개소리는 개소리일 뿐, 난해함으로 포장할 수 없다

2. 개소리 60분보다 배설 1분이 더 효과적으로 철학을 표현했다

3. 이처럼 스캇은 먼 것이 아니요 우리 삶의 곳곳에 숨어 있으니 독립영화 한 편도 놓치지 마시라.

 

 

 

독립영화만큼이나 난해한 글이지만 여러분의 눈요기 한 자락을 맡아 주었기를 기대하며 이만 줄인다.

좋은 밤이다.

 

Comments

반응형 구글광고 등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